- 밀랍의 시간


모든 사물은 정지해 있는듯하지만 변화하고 있다. 그렇다면 밀랍의 시간은 어떻게 흐를까. 밀랍으로 작업하는 이유는 그 흐르는 시간성을 보고 싶어서 이기도 할 테다. 주변 환경에 따라 여지없이 본인의 시간성을 투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밀랍을 보면, 그 물성의 솔직함이 느껴지기도 대견하기도 하다. 환경의 조건에 반응한다는 사실은 현실 세계에서는 위협의 조건이 되거나 허무함을 동반하기도 한다. 현실의 조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, 그 사실 자체를 드러내는 형식 으로써 또 하나의 조건을 갖게 된다. 그것은 맥락 속에서 ‘추상’으로 읽히는 조건이다. 

밀랍 조각은 환경 변화에 반응하는 조건과, 예술이라는 맥락 속에서 읽히는 추상적 조건 사이에 놓여 있다. 
결국 밀랍 조각은 두 가지 조건 사이에서 존재한다. 그렇다면 이러한 조건 속에서도 밀랍으로 만들어진 조각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. 그것을 위해 작업을 하는 나는 어떤 이유로 현실과 허무함을 뒤로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일까.

음악으로 비유를 해보면 어떨까. 음악은 시간예술이다. 뮤지션이 연주하는 음은 그 한순간 공기 중으로 퍼져서 전달되고 흩어진다. 음악가가 음악을 하는 이유는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, 본인의 마음을 울리는 그 작은 부분을 여실히 다듬어 공기 중에 흩어 보내기 위함일지도 모른다.

다시금 나는 왜 밀랍으로 작업을 하는가에 대해 마음을 정리해 보자면, 나는 모든 변화하는 사물, 물성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를 찾고 있다. 그중에 밀랍은 나와 함께 순수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그것을 드러내줄 수 있는 재료이다. 낡아도, 색이 변해도, 먼지가 쌓인 그 모습 뒤의 무언가 남아있다. 무언가가 있다는 걸 느낀다. 그래서 찾고 있다.

사람들이 밀랍이라는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이것이다. “녹지 않나요?”

그 질문을 자주 들어서 어느 정도 둔감해지긴 했지만, 여전히 마음 한편으로는 짜릿하기도 하다. 왜냐하면 나의 작업은 그 질문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. ‘사라질 수 있음’을 견디며 서 있는 저 작업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라고 다들 고민해 보게 된다.

변화의 허무함을 부정하지도 새로운 가능성도 부정하지 않는 작업일 터다. 밀랍은 언젠가 녹을 수 있지만, 지금 존재하고 있는 시간을 드러낸다. 밀랍의 시간은 변하는 것과 남아 있는 것 사이에서 나타난다.


-  2026.03.17